연예인 핫플의 역사) 일제가 만든 최초의 근대식 주택단지, 레트로 핫플이 되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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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38회 작성일 26-07-21 18:39본문

1930년대 후반 일제는 전쟁을 본격화하면서 영등포 일대를 서울에 편입하고 거대한 병참기지로 조성하기 시작함.
군수공장이 들어서고 노동자들이 급격히 유입되자 이들을 수용할 대규모 주거지가 필요해짐.
이에 따라 1941년 설립된 '조선주택영단'이 최초의 계획 공공주택 단지를 조성하게 됨. 참고로'조선주택영단'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전신임.

이 주택단지는조선주택'영단'에서 이름을 따서 '영단주택'이라고 부름. 철저한 바둑판식 격자형 구획으로 설계된 것이 특징임.
길이 110m, 너비 40m 규격의 장방형 토지에 집을 촘촘히 배열하고, 집 사이에는 너비 1m 내외의 좁은 보행로를 배치함.
대량 공급과 토지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규격화된 도면을 바탕으로 반복해서 찍어내듯 건설됨.

주택 규모는 면적에 따라 갑(20평), 을(15평), 병(10평), 정(8평), 무(6평) 등 5가지 유형으로 나뉨.
기본적으로 일본식 주택 형식을 따라 만들었으나 건축 소재는 시멘트 기와와 콘크리트 같은 근대적인 소재를 사용함
면적이 넓은 갑형과 을형은 내부에 화장실이 포함된 고급형으로 주로 일본인 관리자에게 분양됨.
반면 6~10평 수준의 병·정·무형은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임대되었으며,정·무형은공동 화장실을 사용하는 등 주거 환경이 매우 열악했음.
'이쪽 집에서 얘기하는 말소리가 저 끝집에서도 다 들렸어요. 고양이하고 쥐들이 통으로 연결된 천장에서 운동장처럼 뛰어놀았어요.'
라고 주민이 회상할 정도였음.벽돌 쌓듯이 지붕과 벽이 모두 이어져있다보니 생긴 문제임.
해방 이후인 1970년대 서울 도심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청계천 일대에서 밀려난 철공소와 기술자들이 대거 이 동네로 이주함.
특히 1980년대부터는 정부의 의해 도심부적격 판정을 받은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몰려옴. 영단주택 건물들은 서울 최대철강 공단 골목으로 기능이 바뀜.
1990년대 이후 철강산업이 쇠퇴하고 2000년대 이후 다수 공장이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비어있는 공간에 젊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들어섰고, 2010년대 중후반 철공소 사이로 힙한 카페와 식당이 들어섰음
일제강점기 병참기지를 위한 최초의 근대식 주택단지,
1970년대이후 청계천에서 건너온 철공소,
가난한 예술가들이 만든 청년 문화 공간에서
레트로 감성 핫플까지
이 동네는 바로 영등포구 '문래동'임

일제강점기 영단주택단지는 문래동, 상도동, 부평 산곡동 등 여러곳에 지어졌지만 현재 문래동을 제외하고는 모두 재개발되었음
문래동 카페거리에서도 중심지인 문래동 2가와 3가쪽은 철공소가 지어지며 옛모습이 많이 사라졌는데, 문래동 4가의 경우 주택단지가 거의 그대로 남아있음.
다만, 이미 상권이 형성된 문래동 2가와 3가와 다르게 재개발 예정이라 이제 영단주택의 옛모습은 더 이상 보기 어려울지도
참고 글 ㅊㅊ :
박찬희. "문래동 산업시설의 공간특성에 관한 연구." 국내석사학위논문 홍익대학교 대학원, 2020. 서울
최초의 단지형 공공주택 '문래동 영단주택' [백남우 칼럼] <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문화 < 기사본문 - 미디어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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